[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핵폐기물, 연료로 재활용… 신개념 원전 ‘고속로’ 실용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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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재처리해 전기 생산
폐기물 양·보관기간 크게 줄어
대기압서 운전… 사고 위험 예방
‘핵연료 재활용 기술’ 개발 경쟁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사고 이후 한국은 한동안 ‘탈원전’ 정책을 펴면서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낡은 원전을 폐쇄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원전을 적극적으로 건설하고 있다.

이 과정에 원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또 계속해서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이 생겨날 수 있어 환경에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은 값싸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원전 찬성론자들이 “원전이 오히려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핵폐기물 재활용해 새 핵연료 생산

러시아 벨로야르스크 원자력 발전소에 있는 BN-800 소듐냉각고속로. IAEA 홈페이지

가장 큰 문제는 사용후핵연료이다.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매우 강력한 방사성 물질이다. 따라서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 수십만년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땅을 깊숙이 파고 묻는 게 한 방법이다. 그런데 누구나 자신이 사는 동네에 폐기물 매립장이 생기는 걸 싫어할 수밖에 없다 보니 건설 부지를 찾기 어렵다. 국내에선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내부에 임시 보관 중이다. 그러면 원전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발전 연료로 사용한다면 어떨까. 이런 원전 기술이 실제 존재한다. 핵폐기물을 이용해 새로운 핵연료를 만들고, 그 핵연료로 다시 발전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런 원자로를 ‘소듐냉각고속로(SFR)’라 하며 줄여서 ‘고속로’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소듐은 나트륨(Na), 즉 ‘소금’의 다른 말이다.

고속로를 사용하면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버리지 않고 재처리해 다시 핵연료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을 이용하면 다시 발전할 수 있다. 그렇게 발전이 끝나면 다시 사용후핵연료가 나오는데, 이것을 또 재처리하면 그때도 연료를 만들 수 있다. 즉 같은 연료를 몇 번이고 재처리해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마지막엔 폐기물의 양이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는다. 이렇게 여러 번 재처리하기 귀찮으니 아예 연료를 한 번만 채우면 100년 동안 쉬지 않고 전기를 생산하도록 만드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발전에 사용하는 핵연료는 우라늄을 농축해서 만드는데, 그 속에는 우라늄235와 우라늄238이 들어 있다. 현재 기술로는 비율이 0.5%가 채 안 되는 우라늄235만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고속로를 사용하면 99%가 넘는 우라늄238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우라늄235와 달리 우라늄238은 쉽게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다. 불이 잘 붙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진 ‘고속중성자’를 이용해야 겨우 분열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식힐 필요가 있으므로 액체 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한다. 소듐냉각고속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고속로로 발전을 해도 조금은 사용후핵연료가 남는다. 최종적으로 남게 되는 폐기물 양은 20분의 1 정도다. 이미 방사성 물질 대부분이 분열돼 없어진 상태라 그 보관 기간을 100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발전 시 전성비(가격 대비 전력량)가 높아진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액체 나트륨은 끓는점이 섭씨 880도로 물(섭씨 100도)보다 높아 더 많은 열을 흡수하면서 발전 출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현재의 경수로 원자로 대비 같은 비용으로 최대 두 배까지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론적인 안전성은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원자로, 즉 ‘경수로 원자로’에 비해 더 높다는 연구가 많다. 경수로 원자로는 150기압 정도에서 운전되는데, 고속로는 대기압 조건에서 운전할 수 있다. 압력에 의한 각종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용화된다면 일반 원전보다 안전성은 더 높고 폐기물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기존 원전의 장점은 그대로 물려받는다. 이산화탄소 배출도 없어서 지구온난화 걱정도 거의 없다.

게이츠 설립 ‘테라파워’ 상용화 주도

고속로를 이용해 발전하려면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 다시 핵연료로 만드는 ‘핵연료 재활용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그렇게 만든 핵연료로 발전을 하는 ‘고속로 개발 기술’ 두 가지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이 방법을 연구하는 곳은 적지 않다. 2001년부터 미국 프랑스 등 세계 13개국이 개발에 뛰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 빌 게이츠도 ‘테라파워’라는 회사를 설립해 고속로를 실용화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주축으로 독자적 규격의 고속로를 연구해 왔다. 파이로프로세싱이라고 불리는 한국만의 핵연료 재처리 방법도 연구 중이다.

미래에는 핵융합발전이 실용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원리를 이용해 지상에서 에너지를 얻는 기술로, 원전보다 5배 이상 효율이 뛰어나다. 폐기물도 일절 생기지 않고 폭발 위험도 없어 ‘꿈의 청정에너지’로 불린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 지구상에서 핵융합을 일으킨 다음 장시간 유지하는 방법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그 방법을 알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공동으로, 혹은 경쟁적으로 연구 중이다. 연구를 끝마치는 데 최소 30년 정도 내다보고 있다. 반면 고속로 방식은 기술적으로 이미 실용화 단계로, 서두르기만 하면 수년 이내에 도입도 기대할 수 있다.

고속로를 도입하는 데도 찬반이 갈린다. 새로운 기술이라 모든 상황에서 100% 안전하다고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원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고속로에도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핵폐기물을 없앨 수 있고 안전하고 깨끗하게 원전을 계속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원전에 대한 우려가 큰 사람들은 고속로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기술적으로 실증된 바 없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정답은 있을 수 없으므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전기자동차 보급이 급격히 늘고 있으며, 인공지능(AI) 시스템의 중요성 등도 커지면서 대용량 컴퓨터 시설 건설도 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전력 필요량이 크게 늘고 있는 셈이다. 고속로 건설이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이다.

전승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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