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다시 에너지믹스와 원자력을 생각한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4.14 09:17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전 한국원자력학회장)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전 한국원자력학회장)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 전 한국원자력학회장

제22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총선은 여러 차례 분위기 변화를 거치며 진행되었지만, 최종적으로 21대와 유사한 의석 분포로 마무리됐다. 선거운동 기간 에너지 이슈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며, 미래지향적인 에너지정책을 제시할 당선자도 드문 형편이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간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국내 에너지 공기업의 대규모 적자 사태를 목격한 정치권이 실사구시적 시각에서 에너지정책을 접근하기를 기대한다.


에너지정책에서는 경제성, 환경성(탄소중립 포함) 및 에너지 안보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균형있게 고려해야 한다. 전력의 품질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각국의 에너지믹스 전략은 해당 국가의 고유한 환경, 인구 및 산업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 환경은 다른 선진국들과 크게 달라, 선진국 중에서 에너지 공급 구조가 가장 취약하다.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연료뿐 아니라 수력자원조차 빈약하여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5%에 달하고, 에너지 수입 비용이 국가 총수입액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더욱이 유럽이나 북미와 달리 에너지망과 전력망이 사실상 고립되어 있다.


미국상공회의소의 주요 25개국에 대한 에너지 안보 리스크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2008년 이후 줄곧 최하위 또는 24위에 머물러왔다. 과거 북한을 통과하는 러시아 가스관을 통한 에너지 수입의 대안을 모색한 적도 있으나, 최근 유럽의 에너지 위기와 국제정세 변화로 인해 그 비현실성이 확인되었다.




한편, 한국 경제는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제조업 중심의 수출로 견인돼왔다. 전년도 수출액 중 60% 이상을 차지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철강, 자동차, 선박 등 주요 산업이 대부분 에너지 집약적인 기업에 의한 것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고품질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필수적이다.


한국이 이용할 수 있는 저탄소 에너지원으로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있다. 원자력은 설계, 설비 제작, 건설, 운영 등의 기술을 자립한 준국산 에너지원으로서 외화 유출이 적고, 발전 비용이 낮으며, 아랍에미리트 수출에서 보듯이 수출산업으로서의 잠재력이 크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도 시설용량이 매년 10% 이상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 원자력과 함께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주력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 자원의 밀도가 높지 않고 간헐성과 변동성이 심하여 고품질 전기의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공급에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에너지 소비와 생산의 지역적 편중과 불균형도 주목해야 할 문제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에너지 소비의 대부분도 수도권 등 특정지역에 쏠려 있다.


이에 반해 원전은 주로 동해안, 재생에너지는 주로 호남지역에 위치한다. 따라서 재생에너지의 분산형 전원으로서의 역할이 제한적이며, 수 기가와트(GW)급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는 집중식 발전원이면서 변동성까지 커서 국가 전력망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러한 특수 환경을 고려할 때, 한국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특정 에너지원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하면서 원자력, 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 등 무탄소 전원과 배터리(BESS), 수소 등 에너지 저장 기술 등을 효과적으로 조합하여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국가 에너지 공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증가에 따른 전력품질 저하를 방지하고 그리드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요구된다. 마이크로그리드, 스마트그리드, 섹터커플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드 부담을 완화하고, 에너지 다소비 업체들이 에너지 생산시설에 가까이 위치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정책적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이 전체 전력의 50% 수준을 공급할 때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경제성 및 전기품질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우선 견고한 저비용 저탄소 기저부하용 전원으로 30% 수준을 계속 담당해야 한다. 더불어 새로 건설될 대형 원전은 1일 부하추종 및 주파수 제어와 같은 탄력운전 기능을 갖추어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간헐성을 완화할 수 있으며, 약 10% 수준의 전력을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개발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을 비롯한 다양한 SMR이 도입되면 2050년경에는 최대 10% 수준의 전력생산 점유율을 기대할 수 있다. SMR은 에너지 수요가 많은 지역에 직접 건설되어 전력망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아무쪼록 정부와 새로 구성되는 국회가 각계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실사구시적으로 에너지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에너지정책에서는 진영논리보다 데이터와 과학이 우선이다.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